관음시식(觀音施食) - 1

보리심 0 2,518
관음시식(觀音施食)

( 시식은 음식을 베풀어준다는 뜻이니 여가내지 고혼을 천도키위해 음식을 베풀고 부처님 법을 일러주는 의식)

관욕을 마치고 가지예성을 진행하고 나서 영가를 영단에 안치하였으면, 곧바로 이어서 신중단을 향하여 신중작법을 진행한다. 그리고 상단을 향하여 불공을 하는데 주불이 부처님일 경우는 삼보통청을 진행하고, 법당 내에 지장보살님을 모셨거나 주불이 지장보살님일 경우는 지장청을 진행하면 된다. 주불로 부처님을 모신 경우라 하더라도 지장청을 해도 무방하다.

부처님이나 지장보살님을 청하여 영가를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달라는 요지의 불공을 드리고 나면 이 공양을 신중단에 내려 권공을 드려야 한다.

영가를 위하여 영가법문을 하고자 할 때는 관욕을 마치고 바로 영가법문을 하면 되며, 회심곡을 할 경우는 상단불공을 진행하다가 축원을 하기 전에 위패를 부처님 앞에 안치하고 향로와 촛대를 갖추고 진행하면 된다.

신중님에 대한 권공이 끝나면 이제는 관욕을 마치고 영단에 모셔놓은 영가를 상대로 관음시식을 진행해야 한다. 관음시식을 진행할 때는 소리만 따라 할 것이 아니라 더욱더 정신을 집중하여 그 뜻을 깊이 관하도록 힘써야 한다.

<원 문>

거불(擧佛)

나무극락도사아미타불(南無極樂導師阿彌陀佛) (1배)

나무좌우보처관음세지양대보살(南無左右補處觀音勢至兩大菩薩) (1배)

나무대성인로왕보살마하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摩訶薩) (1배)

<<역 문>>

(극락 삼귀의)

극락세계로 이끄시는 스승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좌'우에서 도우시는 관세음'대세지 두 큰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아주 크게 성스러운 인로왕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진 행>

신중단에 대한 퇴공이 끝나면 영단을 향하여 극락교주 아미타불, 좌우보처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인로왕보살의 극락의 네 성인에 대한 거불을 해야 한다. 여기서는 필자의 임의대로 극락회상의 성인께 귀의한다는 의미로 극락삼귀의라 하였다.

목탁과 요령 태징에 맞추어 대중이 함께 일어서서 거불성으로 같이 해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앉은 채로 염불성으로 한꺼번에 같이 할 수도 있다.

일어서서 거불성으로 할 때는 거불을 할 때마다 큰절을 해야 하지만 앉아서 염불성으로 진행할 때는 인로왕보살마하살을 외울 때 반배를 하면 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제자들은 삼정례를 시키도록 한다.

<해 설>

거불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부처님의 이름을 거명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필자의 임의대로 거불을 극락삼귀의라 하였는데, 극락세계에는 극락세계를 건설하여 주인 되시는 아미타부처님과 극락세계의 장엄을 유지하는 아미타불의 마흔여덟 가지 원력에 의해 구성된 진리의 세계, 그리고 아미타불을 도와 극락세계를 장엄하고 중생들을 제도하시는 보살님들이 계시다. 그러므로 아미타불과 아미타불의 48대원과 아미타불의 권속들인 관음'세지보살님과 인로왕보살님께 귀의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므로 극락삼귀의라고 이름붙여 보았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고, 대세지보살은 세력, 즉 복력을 상징한다. 극락세계에 계신 아미타불의 원력은 두 보처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하여 중생들이 극락에 가서 날 수 있으며, 극락세계의 모든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완전히 갖춰지는 것은 대세지보살의 세력, 큰 복의 힘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이 극락세계로 중생을 인도하는 분이 인로왕보살님이다.

관음시식을 통해서 영가를 천도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극락세계의 네 성인께 귀의해야 한다.

<원 문>

거량(擧場)

거사바세계(據娑婆世界) 차사천하(此四天下) 남섬부주(南贍部洲) 해동(海東) 대한민국(大韓民國) ○산(山) ○사(寺) 청정수월도량(淸淨水月道場)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제당(第當) (49일(日), 백일(百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엄부(嚴父)) 소천망(所薦亡) ○영가(靈駕)

재설(再說)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제당(第當) (49일(日), 백일(百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영가(靈駕)

삼설(三說) 원아금차(願我今此) 지의성심(至意誠心) 생전효행(生前孝行) 사후(死後) 제당(第當) (49일(日), 백일(百日)) 지신(之辰) 천혼재자(薦魂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영가(靈駕) 영가위주(靈駕爲主) 복위기부(伏爲記付) 상세선망(上世先亡) 사존부모(師尊父母) 다생사장(多生師長) 누대종친(累代宗親) 제형숙백(弟兄叔伯) 자매질손(姉妹姪孫) 원근친척(遠近親戚) 등(等) 각열위영가(各列位靈駕) 차도량내외(此道場內外) 동상동하(洞上洞下) 유주무주(有主無主) 일체애고혼(一切哀孤魂) 제불자등(諸佛子等) 각열위영가(各列位靈駕) 내지(乃至) 철위(鐵圍) 산간(山間) 오무간지옥(五無間地獄) 일일일야(一日一夜) 만사만생(萬死萬生) 수고함령(受苦咸靈) 제불자등(諸佛子等) 각열위영가(各列位靈駕) 내지(乃至) 겸급법계(兼及法界) 보여군생(普與群生) 사생칠취(四生七趣) 삼도팔난(三途八難) 사은삼유(四恩三有) 일체유정무정(一切有情無情) 애고혼(哀孤魂) 제불자(諸佛子) 등(等) 각열위열명영가(各列位列名靈駕)

착어(着語)

영원담적(靈源湛寂) 무고무금(無古無今) 묘체원명(妙體圓明) 하생하사(何生何死) 변시(便是) 석가세존(釋迦世尊) 마(摩) 갈엄관지시절(竭掩關之時節) 달마대사(達摩大師) 소림면벽지가풍(少林面壁之家風) 소이(所以) 니련하측(泥蓮河側) 곽시쌍부(槨示雙趺) 총령도중('嶺途中) 수휴척리(手携隻履)

제불자(諸佛子) 환회득(還會得) 담적원명지(湛寂圓明底) 일구마(一句') (양구(良久))

부앙은현현(俯仰隱玄玄) 시청명역력(視聽明歷歷) 약야회득(若也會得) 돈증법신(頓證法身) 영멸기허(永滅飢虛) 기혹미연(其或未然) 승불신력(承佛神力) 장법가지(仗法加持) 부차향단(赴此香壇) 수아묘공(受我妙供) 증오무생(證悟無生)




<<역 문>>

(도량을 거듬)

사바세계 이 사천하 남염부제 해동 대한민국 ○도(시) ○군(구) ○동 ○번지 ○산에 있는 청정하고 뛰어난 도량 ○사에서 ○에 거주하는 행효자 ○가 ○영가께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살아계실 때는 효도를 다하다가 돌아가신 지 어언 49일을 맞아 천도를 하고자 합니다.

거듭 설하건대, 지금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살아계실 때 효행을 다하던 ○에 거주하는 행효자 ○가 돌아가신 아버지 ○영가의 49재일을 맞아 망 엄부 ○영가를 청하옵니다.

재삼 설하건대, 지금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살아계실 때 효행을 다하던 ○에 거주하는 행효자 ○가 돌아가신 아버지 ○영가의 49재일을 맞아 망 엄부 ○영가와 영가를 위주로 복위가 되거나 기부가 되는 웃대 세상에서 먼저 가신 스승과 부모 되는 영가, 오랜 생에 걸쳐 어른 되었던 영가, 여러 세대에 걸친 종친들과, 형과 아우, 숙부와 백부, 언니와 누이, 조카와 손자, 멀고 가까운 친척 되는 모든 영가 내지 이 도량 안과 밖의 동네 위나 동네 아래에 주처가 있거나 없거나 슬프고 외로운 영가와 모든 불자들의 여러 영가, 철위산으로 둘러쳐진 무간지옥에서 하루낮 하루밤에 만 번 살아났다가 만 번 죽는 고통을 받는 모든 영가, 내지 아울러 모든 법계에 널리 모여 사는 무리들과 태'란'습'화로 태어나는 네 가지 생령들과 일곱 가지 갈래와 여덟 가지 어려움의 지옥'아귀'축생 삼악도와 네 가지 은혜가 있는 욕유'색유'무색유 세계의 일체 마음(유정)이 있거나 마음이 없거나 한 슬프고 외로운 혼과 모든 불자들의 여러 영가를 모두 청하옵니다.

(착어)

신령스러운 근원은 맑고도 고요하여 옛과 지금이 다르지 않고, 묘한 본체는 뚜렷이 밝은데, 어떤 것을 태어남이라 하고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 곧바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마갈다국에서 관문(6근의 문)을 닫는 때가 있었으며, 달마대사는 소림굴에서 (9년 동안) 면벽하신 가풍이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니련선하 옆에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보이셨고, 총령을 넘어가는 도중에 손에 짚신 한 짝만 들고 가셨습니다.

모든 불자들이시여, (이 자리에 동참한 영가와 대중들이시여) 한 생각 돌이키면 맑고 고요하고 뚜렷이 빛나는 근원을 얻을 것입니다.

제 일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잠시 후 요령을 세 번 울리고)

(고개를) 구부리면 숨어버리고 우러르면 나타나서 보고 들음이 밝고 역력하구나, 곧바로 한 생각 돌이켜서 단박에 법신을 증득하면 영원히 배고픔을 면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부처님의 위신력과 법의 가지에 의지하여 이 향단에 내려와서 나의 묘한 공양을 받으시고 태어남이 없음(없는 진리)을 깨달아 증득하소서.




<진 행>

거불이 끝나면 법주가 요령을 세 번 흔들고 나서 천도를 하고자 하는 목적과 도량의 이름과 제자의 이름과 영가의 이름을 거드는 거량을 세 번하고 착어 법문을 하면 된다.




<해 설>

거량은 오늘 천도를 할 영가들에게 행효자 ○○가 무슨 목적으로 이 재단을 차렸는가를 아뢰는 순서이다.

흔히 말하기를, 귀신은 이야기를 하기가 무섭게 알아듣는다고 한다. 즉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재를 진행하는 의도를 영가에게 잘 알려야만 한다. 영가를 빠짐없이 불러내서 묵은 업장을 소멸시키고, 모자라는 복덕을 보충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치게 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날 인연(因緣)을 심어주고자 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으로 세 번 알린다. 또 그것도 모자라서 주인공되는 영가가 여러 생 동안에 신세진 모든 영가, 또 돌보아 주어야 할 모든 영가에게 고하여 천도재에 왕림할 준비를 갖추게 하는 것이 거량의 목적이다.

중생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농사짓지 않으면서도 곡식을 먹을 수 있고, 베짜지 않으면서도 몸을 가리는 옷을 입을 수 있고, 자동차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차를 타고 다니고, 직접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지 않고서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수하게 널려 있는 중생들의 수고로움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은혜 받음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연 있는 영가를 불러서 천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천도할 영가를 복위나 기부로 하여 여러 다른 영가를 불러서 천도하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만약 천도하려는 영가의 아버지 되는 영가가 아직 천도되지 못하였다면, 그 아버지 되는 영가가 먼저 천도되어야만 오늘 천도하려는 영가를 올바로 천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 영가가 극락으로 가려면 천도되지 못한 영가의 아버지 영가는 그야말로 크나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을 것이요, 설사 아버지 영가를 그대로 두고 아들 영가만 극락에 천도되었다 하더라도 악도에서 고통받는 아버지 때문에 아들 영가의 마음이 극락의 즐거움에 계합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아들 영가가 머무는 극락은 이미 극락이 아닌 곳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무수한 세월 동안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에 우주 법계 안의 유정이나 무정들 모두가 인연닿지 않는 것 그 무엇이 있을까'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그들 모두 천도되어야만 천도하려는 영가가 올바로 천도되는 것이다.


<착어 해설>

착어는 법주가 영가를 상대로 법문하는 시간이다.

여기서 신령스러운 근원이라 함은, 중생의 근본 마음자리, 즉 불성을 말한다. 그 불성에 어찌 옛날과 지금이 다를 것이며, 본체가 본래로부터 뚜렷이 밝은 것이라면 죽었다든지 태어났다든지 하는 생사라는 것을 어디 물을 곳이 없다는 말이다.

옛날에 육조 혜능스님이 황매산에 있는 오조 홍인스님을 배알하자, '너는 어디 사람이며 무엇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혜능은, '미천한 제자는 영남 신주 사람인데 먼 길을 와서 스님을 모시려고 함은 오직 성불하고자 함이요,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고 대답하자, 다시 홍인스님이 힐난한다.

'네가 신주에서 왔다면 오랑캐가 아니냐' 어찌 성불할 수 있겠느냐''

혜능이 다시 답하였다. '사람이야 남'북이 다르겠지만 어찌 불성에 남'북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남'북인의 몸은 각기 다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닌 불성이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흥인과 혜능의 대화에서 보듯이 불성에 남'북이 다르지 않듯이 옛과 지금이라고 해서 중생의 근본 마음자리인 불성에 다름이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또 혜능대사의 임종을 오대제자 중의 한 사람인 신회 선사가 제자들과 지키고 있었다. 이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울음을 참지 못하였으나 신회 선사만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에 혜능이 말하였다.

'너희들 중 오직 신회 하나만 선악을 초월하였고, 명예와 불명예가 아랑곳 없고 슬픔과 즐거움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였구나.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 몰라서 그런 것 아니냐. 그러나 나는 내가 갈 곳을 알고 있다. 만약 갈 곳을 모른다면 어떻게 너희들에게 말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이 슬퍼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안다면 슬퍼할 이유가 없을텐데. 법성은 나고 죽고, 가고 오는 데 구애됨이 없느니라.'

혜능대사의 말씀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것은 본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법성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마갈타국에서 모든 침식을 잃어버리고 하루 쌀 한 톨 가지고 지내는 생활을 6년 간이나 계속하였다. 또 달마대사는 중국에 건너와서 양무제를 만나보고 아직 선법(禪法)을 전할 시기가 아님을 알고 소림굴에서 9년 동안이나 벽을 대하고 참선하면서 제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후 면벽하는 것은 참선가의 가풍이 되었다.

이와 같이 나고 죽음이 본래 없는 까닭으로 부처님께서는 시신을 넣는 관 밖으로 두 발을 보이셨고, 달마대사는 중국에 선법을 전하고 총령을 넘어 인도로 가는데 주장자 끝에 짚신 한 짝만 들고 가더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곽시쌍부의 일화를 잠시 들어보자.

부처님께서는 세수(世壽)를 다하시고 니련선하 앞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셨다. 모든 장례절차를 마치고 화장을 하기 위해서 관 밑에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려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불을 붙이려고 해도 불이 붙지 않았다. 얼마 후,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가섭존자가 와서 부처님을 모신 관을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나서 부처님 발쪽에 대고 정례를 하고 슬피 울면서 '어찌 부처님의 열반이 이리도 빠르십니까''라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부처님의 두 발이 일곱 겹이나 되는 관 밖으로 쑥 나왔다. 가섭이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고 두 발에 예배를 하였다. 두 발이 다시 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관에서 저절로 불이 일어나서 화장을 해 마쳤다.

만약 부처님이 열반하셨지만 정말 죽고 사는 존재라면 어찌 죽은 송장이 그것도 일곱 겹이나 되는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 수가 있을 것인가' 이미 생사와 시공을 초월한 것이다.

달마대사가 짚신 한짝만 들고 총령을 넘아갔다는 일화도 재미 있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파초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양자강을 통하여 양나라로 들어갔다. 양나라의 임금인 무제는 절과 탑을 짓는 불사를 매우 좋아하여 전국에 8만4천이나 되는 탑과 절을 지었다. 그리고 불교의 불살생계를 지키도록 하였다.

인도에서 고승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궁중으로 청하여 법문을 듣게 되었다. 양무제는 자기가 추진한 불사의 공덕을 자랑하고 싶었다.

'내가 이와 같이 많은 탑사를 지었는데 공덕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 공덕도 없소.' 달마대사는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였다. 화가 난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단칼에 처형을 하였다.

그런데 천축국을 다녀오던 사신이 총령에서 달마대사를 만났다. 대사는 짚신 한 짝을 주장자에 매달아 어깨에 걸고 총령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어찌된 영문인가. 무제가 얼마 전 궁궐에서 달마대사를 처형하는 것을 보았는데, 처형된 대사가 살았으니 모골이 송연하도록 놀랐다. 게다가 달마대사는 사신에게 '양무제도 안녕하시냐'고 안부까지 묻는 게 아닌가. 궁궐로 돌아온 사신은 이 사실을 양무제에게 보고하였다. 양무제는 달마대사를 장사지냈던 무덤을 파 보았다. 그런데 관 속에는 달마대사의 시신은 없고, 오직 짚신 한 짝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이 예화는 삶과 죽음이 없다는 것을 바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영가에게 말하여 줌으로써 오늘의 영가들이 바로 깨달아 무생법인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다. 오늘 천도재에 동참한 모든 영가들에게 한 생각을 돌이켜서 깨달으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일체의 번뇌와 죄업이 사라진 자리, 진여의 세계가 드러나 맑고 고요하고 뚜렷하게 빛나는 근원을 얻는다고 한 것이다.

일구마, 즉 '제일구는 무엇인가''라는 말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교의 참뜻은 무엇인가''라는 말이다. 선가에서 상용하는 말이다.

제일구라는 것은 진리 당체를 직접 지칭하는 말이다. 제일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 직후에 곧바로 요령을 세 번 울리는데, 요령을 세 번 울리는 것이 바로 제일구에 대한 대답이다. 이 요령을 세 번 울리는 소식을 알아듣지 못하는 영가를 위하여 다시 사족을 달아 설명을 붙이는 것이 다음 구절이다.

진여 법계는 원만하여 일체의 걸림이 없고 생사가 없는데, 중생들이 고개를 구부리고 쳐들듯이 번뇌를 일으켜서 진여 법계를 배반하였다. 그 배반으로 말미암아 생사윤회에 떨어지게 되었는데, 고개를 수그리는 것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요, 고개를 드는 것은 태어남을 말한다. 그러나 이 죽고 사는 가운데서도 참 마음의 작용은 뚜렷하여 보고 들음이 밝고 역력하다.

한 생각, 번뇌 즉 아집을 일으키면 곧 나고 죽는다는 생각이 일어나 생사의 관념에 떨어지고, 한 생각을 돌이켜 아집을 버리고 진여 법계를 바로 보면, 거기에서 법신을 체득하게 된다. 그런 법신 자리에 무슨 배고픔이나 목마름 따위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참마음 자리를 깨달아 무생법인<1/4>-<1/4>태어나지 않는 법의 자리를 얻어 해탈하라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먹고 마시지 않더라도 목마름과 주림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목마름과 주림이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위신력에 따라 이 향기로운 단에 내려와서 삼밀가지에 의하여 행하는 법의 공양을 먼저 받고 그 다음에 태어남이 없는 진리를 깨달아서 해탈하라는 것이 착어법문이다.

Comments

카테고리
반응형 구글광고 등
  • 글이 없습니다.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3 명
  • 오늘 방문자 35 명
  • 어제 방문자 79 명
  • 최대 방문자 232 명
  • 전체 방문자 88,412 명
  • 전체 회원수 71 명
  • 전체 게시물 71 개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