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시식(觀音施食) - 6

보리심 1 4,534
<원 문>

봉안게(奉安偈)

생전유형질(生前有形質) 사후무종적(死後無從跡) 청입법왕궁(請入法王宮) 안심좌도량(安心坐道場)




<<역 문>>

편안하게 받들어 모시는 게송

살았을 적엔 형체와 걸림 있더니

죽은 후엔 아무 종적조차 없구나

법왕의 궁전에 초대하여 맞아들였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도량에 앉으소서




<진 행>

 7'7재를 모시고 난 다음 7'7재가 계속 이어지거나, 49재를 끝으로 영가를 봉송하여 탈상을 하지 않고 백일재에 탈상하는 경우, 즉 영단에 위패를 모셔두는 경우에 행하는 의식이다. 영단에 위패를 모셔둔 채로 다같이 서서 법주를 따라 재자들은 삼배를 하고 재를 마친다.




<해 설>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는 영혼이 육체에 의지하므로 형질이 있다. 형질이란 형태가 있고 그 형태에 따른 모양새를 말한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육신은 걸림이 있어 질애가 있으나, 목숨을 마치면 영혼이 몸을 떠나게 되므로, 비록 몸이 있다고 생각하여 제사도 지내고 죽은 뒤 몇 세대가 지난 후에 천도재를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 영혼의 상태에서는 있다는 생각만 있을 뿐 실재로는 아무런 가시적인 형체가 없으므로 종적이랄 것이 없다.

그러나 육신에 의지하여 평생을 살아온 영가는, 육신의 모양과 같은 영혼에 의지하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개체는 해탈하기 전까지는 실제로는 없지만, 집착 때문에 허상으로 있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사후라고 하더라도 이를 존중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성불시켜야 한다. 법문을 계속 일러주어 해탈시키기 위하여, 정중히 법왕의 궁전 즉 법당내의 영단에 봉안하여 후손된 도리를 정성스레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원 문>

봉송편(奉送篇)

봉송고혼계유정(奉送孤魂'有情)  지옥아귀급방생(地獄餓鬼及傍生)

아어타일건도량(我於他日建道場)  불위본서환래부(不違本誓還來赴)

제불자(諸佛子) 기수향공(旣受香供) 이청법음(已聽法音) 금당봉송(今當奉送)

갱의건성(更宜虔誠) 봉사삼보(奉謝三寶)

보례시방상주불(普禮十方常住佛) 보례시방상주법(普禮十方常住法) 보례시방상주승(普禮十方常住僧)

행보게(行步偈)

이행천리만허공(移行千里滿虛空)  귀도정망도정방(歸途情忘到淨邦)

삼업투성삼보례(三業投誠三寶禮)  성범동회법왕궁(聖凡同會法王宮)

산화락(散花落) (3번)

나무대성인로왕보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 (3번)

의상조사법성게(義湘祖師法性偈)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파식망상필부득('息妄想必不得)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역 문>>

[받들어 보내는 편]

(받들어 보내는 게송)

고혼과 유정들을 받들어 보내드리오니

지옥과 아귀중생 붙어사는 생령들이여

내가 다른 날에 도량을 다시 세우거든

본래 서원 어김 없이 다시 돌아오소서

모든 불자들이시여, 이미 향그러운 공양 받으시고 이미 부처님의 법음을 들으셨으니, 이제 보내드리고져 하옵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삼가하고 정성을 다해 삼보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소서

널리 온 세계에 항상 계신 부처님께 절하옵니다

널리 온 세계에 항상 계신 법보님께 절하옵니다

널리 온 세계에 항상 계신 승보님께 절하옵니다

(걸음을 떼는 게송)

천리에 가득찬 허공을 옮겨가다가

돌아가는 길에 망정을 잊으면 정토에 도달한다네

삼업을 던져 정성스레 삼보님께 절하오니

성인과 범부 모두 함께 법왕궁에 모이소서

꽃을 흩어 가시는 길에 뿌립니다

대성 인로왕보살님께 귀의하옵니다










<진 행>

법주와 바라지가 요령과 목탁으로 함께 봉송게를 낭독할 때, 재자들은 마지막으로 영단에 모셔진 위패를 향하여 삼배를 올린다. 다음에는 맏상주가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동참한 재자들이 영가옷과 향로 촛대 등을 들고 법당의 중앙에 나란히 정열을 하고 부처님을 향해 선다.

법주가 요령을 세 번 흔들고 나서 부처님께 하직 인사를 올리는 의식문을 낭독하고 나면, 요령과 목탁에 맞추어 위패를 모신 재자는 선 채로 위패틀을 내리고 무릎을 굽혀 부처님 전에 세 번 절하면 된다. 기타 재자들은 자기가 가진 집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부처님 전에 같이 세 번 절을 한다.

재자들은 법주와 바라지가 행보게를 할 때도 행보게의 끝에 함께 절을 하고, 산화락을 세 번 외우면 같이 절을 하고, 나무대성인로왕보살을 외울 때도 같이 절을 하면 된다.

다음에는 법성게를 외우며 법당을 세 번 돌고 법당을 나와 소대로 향하게 되는데 법주가 앞에 서고 바라지 위패, 향로, 촛대, 영가 옷을 든 재자들 순으로 일렬로 행진하여 소대까지 따라가면 된다.




<해 설>

봉송편은 천도재를 끝낸 영가를 소대로 데려가서 위패를 사르고 옷가지 등을 태워서 극락세계로 전송하는 의미를 가진 의식이다.

봉송게는 제사를 마친 영가가 떠나기 전에 부처님께 하직인사를 드리는 노래이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위신력으로 극락세계가 있음을 알고, 영가의 육신이나 영혼이 허망한 망상임을 알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있음을 안 것이다. 그러므로 극락세계로 떠나기 전에 부처님께 정중하게 감사의 하직인사를 올리는 것이다.

그동안 불러서 공양을 대접하고 법문을 일러준 일체 고혼과 유정들과 지옥중생, 아귀중생 그리고 다른 생명체에 붙어서 사는 생령들을 모두 보낸다. 보내되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날에 도량을 다시 세우거든 오라는 것이다.

내가 다른 날에 도량을 다시 세운다는 말은 천도재를 다시 개설한다는 것이 아니라, 바른 깨달음을 얻고 몸과 마음이 진리로 충만된 부처가 되어 도량, 즉 도장을 세우겠다는 말이다. 본래 서원이란 수행하여 성불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수행하여 성불을 할 것이니, 그때에 부디 일체의 악취를 벗어나 깨달아 성불하겠다는 본래의 서원을 잊어버리지 말고 진리의 회상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뜻이다.

지옥이나 아귀, 남에게 붙어사는 불쌍한 영혼들이 부처님의 법음을 가득히 담고 떠나가게 된다. 그러하니 부처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떠나가는 것이다.

시방세계에 불보인 부처님과 법보인 가르침과 승보인 스님들이 항상 계신다 함도 다른 말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고 진리의 세계에 들어 부처가 된 이의 눈으로 보면, 일체 모두가 실상은 부처님 아닌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고 나니 이 세상은 사바가 아니라 그대로 화장장엄세계라고 하였고,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시방은 온 세계를 이름한다.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이는 부처님이요, 모든 움직이는 원리는 가르침이요, 진리를 찾아 구도하는 이는 스님 아닌 이가 없다. 그러므로 시방세계에 항상 계시다라고 말하고 꽉 차 있다고 말한다. 부처님 전에 절하는 것은 모든 삼보님께 감사의 절을 올리는 것이다.

행보게에 말하기를, 천 리에 가득한 허공을 옮겨간다고 하였다. 허공이 어디 천 리만 허공이랴. 끝이 없는 허공을 천 리라 표현한 것이다.

귀도에 정을 잊으면 정토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중생들이 정토에 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정하지 않다는 것은 살아온 삶의 기억을 모두 '나'라고 집착하여 번뇌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착하고 있던 정을 잊어버리기만 하면 청정해져서 그곳이 바로 정토가 된다. 마음에 집착이 많은 이, 욕심이 많은 이가 사는 곳은 그곳이 설사 천당이나 극락이나 하더라도 천당이나 극락이 될 수가 없다.

다음에 삼업을 던진다고 하였는데, 대체 무슨 뜻인가' 삼업을 던진다고 하는 말은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고 하는 말이다. 몸과 입과 마음을 모두 던지고 바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삼업을 깨끗하게 없애야 한다. 즉 세 가지로 지은 죄를 깨끗하게 참회해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실상이 아니고 허상이요, 망상이요, 망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하게 삼업을 던지려면 그 몸과 입과 마음을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 나라고 생각하는 집착된 생각을 빼버려야 한다. 그것이 신구의를 던져 정성스레 삼보님께 절함이다. 그래야만 범부와 성인이 모두 깨달아 부처가 되어 법왕궁에 진실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산화락이란 가시는 길에 꽃을 흩어 뿌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꽃을 뿌린다 함은 곧 마음에 한없는 기쁨을 가지고 극락으로 가는 길을 밟음이다.

공양을 대접 받고 법문을 들었지만, 아직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 상태가 아니다. 이미 해탈하여 부처가 된 자라면 굳이 인로왕보살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직은 업보를 가진 중생이기에 후손들의 자비심에 의하여 인연 지은 극락으로 가기 위해서는 인로왕보살님을 따라 가야만 한다.


<원 문>

[소대작법(燒臺作法)]

금차(今此) 문외(門外) 봉송재자(奉送齋者) ○거주(居住) 행효자(行孝子) ○복위(伏爲) 소천망(所薦亡) ○영가(靈駕) 영가위주(靈駕爲主) 상세선망부모(上世先亡父母) 다생사장(多生師長) 누대종친(累代宗親) 제형숙백(弟兄叔伯) 자매질손(姉妹姪孫) 원근친척등(遠近親戚等) 각열명영가(各列名靈駕) 차도량내외(此道場內外) 동상동하(洞上洞下) 유주무주(有主無主) 일체애고혼불자등(一切哀孤魂佛子等) 각열위열명영가(各列位列名靈駕) 상래(上來) 시식풍경(施食諷經) 염불공덕(念佛功德) 이망연야(離妄緣耶) 불리망연야(不離妄緣耶) 이망연즉(離妄緣則) 천당불찰(天堂佛刹) 임성소요(任性逍遙) 불리망연즉(不離妄緣則) 차청산승(且聽山僧) 말후일게(末後一偈)
사대각리여몽중(四大各離如夢中)  육진심식본래공(六塵心識本來空)
욕식불조회광처(欲識佛祖回光處)  일락서산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

풍송가지(諷誦加持)
염시방삼세(念十方三世) 일체제불(一切諸佛) 제존보살(諸尊菩薩) 마하살(摩訶薩)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왕생극락견미타(往生極樂見彌陀) 획몽마정수기별(獲蒙摩頂授記')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원재미타회중좌(願在彌陀會中坐) 수집향화상공양(手執香華常供養)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왕생화장연화계(往生華藏蓮華界)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소전진언(燒錢眞言) 「옴 비로기데 사바하」

봉송진언(奉送眞言) 「옴 바아라 사다 목차목」

상품상생진언(上品上生眞言) 「옴 마리다리 훔 훔 바닥 사바하」

처세간여허공(處世間如虛空) 여련화불착수(如蓮華不著水) 심청청초어피(心淸淸超於彼)

계수례무상존(稽首禮無上尊)

귀의불(歸依佛) 귀의법(歸依法) 귀의승(歸依僧)

귀의불(歸依佛) 양족존(兩足尊) 귀의법(歸依法) 이욕존(離欲尊) 귀의승(歸依僧) 중중존(衆中尊)

귀의불경(歸依佛竟) 귀의법경(歸依法竟) 귀의승경(歸依僧竟) 선보운정(善步雲程) 복유진중(伏惟珍重)

보회향진언(普廻向眞言)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 훔」

화탕풍요천지괴(火蕩風搖天地壞)  요요장재백운간(寥寥長在白雲間)

일성휘파금성벽(一聲揮破金城壁)  단향불전칠보산(但向佛前七寶山)

나무환희장마니보적불(南無歡喜藏摩尼寶積佛) (1배)

나무원만장보살마하살(南無圓滿藏菩薩摩訶薩) (1배)

나무회향장보살마하살(南無廻向藏菩薩摩訶薩) (1배)


<<역 문>>

이제 문 밖에서 받들어 보내드리는 재자 ○에 거주하는 ○불자의 아버지 ○영가와 영가의 옛날 세상의 모든 부모님과 여러 생에 걸친 스승 되거나 어른 되시는 영가, 여러 대에 걸친 종친들과 형되고 아우되었던 영가, 누이와 조카 손자 되었는 영가, 멀고 가까운 친척되는 각 영가와 이 영가와 이 도량 안팎이나 동네의 위나 아래의 주처가 있거나 없는 일체의 슬프고 외로운 영가들이시여!

위에서 이미 음식을 베풀고 경을 읊거나 염불하신 공덕으로 망령된 인연을 여의었습니까' 여의지 못하였습니까'

망령된 인연을 여의었으면 천당이나 부처님 나라에서 마음대로 지내시고 망연을 여의지 못하였으면 이 산승의 마지막 한 마디를 들으소서.

사대가 각기 흩어지니 한 바탕 꿈 속의 일과 같고

육진(색성향미촉법)과 심식도 본래 텅 비었도다

부처님과 조사가 빛으로 돌아간 곳을 알고자 하는가'

해가 서산으로 지니 달이 동쪽에서 솟아 오르는구나

시방삼세에 계신 일체의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님들이시여, 큰 지혜로써 피안에 이르게 하소서.

가고지고 가고지고, 극락세계 어서 가서

아미타불 친히 뵙고 마정수기 원합니다

가고지고 가고지고, 미타 회상 있으면서

향과 꽃을 늘 가지고 공양하기 원합니다

가고지고 가고지고, 화장세계 어서 가서

나와 남이 모두 함께 부처되기 원합니다

염부전 사르는 참말씀

「옴 비로기데 사바하」)

받들어 보내는 참말씀

「옴 바아라 사다 목차목」)

상품상생에 나는 참말씀

「옴 마리다리 훔 훔 바닥 사바하」)

세간에 있으면서도 허공과 같고 연꽃에 물이 묻지 않음과 같이 마음이 청정해서 세간을 뛰어 넘은 위없는 부처님께 머리숙여 절하옵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

복덕'지혜 갖추어 존귀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일체의 유위를 떠나신 존귀하신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모두 화합하시어 존귀하신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경지에 귀의합니다

가르침의 경지에 귀의합니다

스님들의 경지에 귀의합니다

천 리 먼 길 잘 가시길 진정으로 엎드려 바랍니다

널리 회향하는 참말씀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 훔」)

불로 태우고 바람 불어 천지가 무너져도

고요하고 고요함이 흰구름 사이에 그냥 있도다

한 소리 휘둘러서 쇠로 된 벽을 허물고

다만 부처님 앞의 칠보산으로 향하여라

환희장마니 부처님께 귀의하옵니다

원만장 큰보살님께 귀의합니다

회향장 큰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진 행>

법당에서 불보살님께 하직인사를 마친 영가를 보내기 위해서는 법주의 뒤를 따라서 위패, 영정, 향로, 촛대, 태울 옷과 지전을 들은 재자의 뒤로 동참 대중 모두가 합장을 하고 행진하여 소대에 이르도록 한다.

소대에 도착하였으면 법주는 요령을 세 번 흔들고 봉송하는 축원을 한 다음 '차청산승 말후일게'까지 외우고 요령을 한 번 내리고 4구게를 외운 다음 바라지와 함께 '염시방삼세'부터 '단향불전칠보산'까지 같이 염불을 하는 동안에 준비한 옷과 지전을 태우고 '소전진언'을 외울 때에 만들어 붙였던 전과 위패와 영정들을 태우면 된다.

마지막에 스님과 재자가 함께 세 번 반배를 하고 마치면 일체 시식은 끝나게 된다.


<해 설>

봉송문은 그 동안 청하여 염불하고 독경을 해주었던 영가들을 마무리 하여 모두 보낸다는 내용이다.

즉 모든 영가들에게 이미 재를 베풀어 경문을 독송하고 염불을 해주었으니 그러한 법문을 통하여 일체의 망령된 인연을 끊어 버리라고 하였는데, 끊었는지 못 끊었는지를 재차 묻고 있다. 망령된 인연을 끊었다면 천당과 부처님 나라 즉 정토에서 마음대로 잘 지내시고, 끊지 못하였다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들으라는 것이다.

인연이 망령되다는 말은 앞에서도 누차 이야기한 바가 있다. 모든 것은 일체 없는 것이 본질이나 중생들이 쓸데없는 집착으로 아집을 일으켜서 본질의 세계를 벗어나서 일체를 만든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여 실제는 없는 인연을 만들어 있게 한 것이 이 세상의 모든 모습이다. 그래서 一切唯心造라고도 말하고, 『금강경』에서는 일체유위법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번개불과 같아, 모든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 헛되고 망령된 것이니, 이와 같이 관을 해야 본질의 자리 실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천당이나 극락에 가려면 현재 번뇌의 몸과 마음 상태로는 갈 수 없다. 깨끗한 곳에 가려면 거기에 합당한 몸과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마치 서울대학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서울대학에 갈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과 같다. 천당이나 극락은 바로 마음이 청정하여 조촐해진 사람만이 갈 수가 있다. 설사 더러워진 마음으로 천당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마음 속에 더러움을 가진 사람에게 그곳은 결코 복락이 가득한 정토일 수가 없다. 천당이나 극락에 가기 전에 마음에서 일체의 망상과 망념을 지워버려야 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현재는 실재성이 없다. 그것은 사라진 사실에 대한 환상이고, 사라진 물거품이고, 사라진 그림자이다. 현재 보고 듣고 하는 일도 실재가 아닌 꿈 속의 일이라고 옛사람들이 누누히 말하지 않았던가! 몸을 구성하고 있던 지'수'화'풍의 사대가 각각 흩어지니, 나라고 알고 살았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바로 꿈 속의 일만 같다는 것이다.

객관의 세계인 색성향미촉법과 심식 또한 본래는 없다는 말이다. 주관(안이비설신의)인 6근이 발생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있는 것이 객관이기 때문이다.

'欲識佛祖回光處'라는 말은 묘미가 있다. 인간이 해탈하여 열반하려면 모든 것을 없애고 나서 빛이 되어야 한다. 이 빛이 되신 분들이 부처님과 조사들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마음을 돌이켜서 빛이 된 곳이 회광처이다.

해가 서산으로 지고 달이 동쪽에서 뜨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일체의 인위와 작위가 섞여 있지 않다. 인위와 작위가 있는 것은 유위라고 한다. 해와 달에게는 일체 뜬다거나 진다는 생각없이 그냥 뜨고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일체의 모든 세계의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큰 지혜로써 피안으로 건너신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모든 불보살은 자기 없음(무아집)으로써 고통스럽고 유한하고 내가 아니고 더러운 세계를 벗어나 영원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세계로 건너갔다. 그러므로 이 봉송하는 자리에서 이승의 모든 인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부처님 나라를 생각하며 홀연히 떠나가라는 것이다.

극락에 가서 아미타불 뵈옵고 마정수기 얻어 성불하고, 아미타부처님의 회상에 앉아서 항상 향화로써 부처님을 공양하고 연화장세계에서 일시에 성불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영가를 위해 간절히 또 간절하게 이르고서 소전진언을 통해 위패를 사르고 봉송진언을 통해 정중히 보내고 상품상생진언을 통해 극락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다시 이 세상에 계시면서도 청정한 몸과 마음으로 일체의 벗어나신 부처님 위없는 부처님께 다시 귀의한다.

이렇게 부처님의 일체 깨달으신 경지까지 귀의해서 부처님의 마음과 같아야 된다. 그러므로 머나먼 길(운정)을 잘 갈 수 있도록 엎드려 또 빌어준다. 이렇게 마음에 극락이 있는 자는 앉고 누워 있는 자기 자리가 극락이건만, 중생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가고 옴이 있는 까닭에 십만팔천 리를 떠나서 극락이 있는 것이다.

다시 보회향진언을 통해서 여태까지 지은 공덕을 모두 회향한다. 왜 회향하는가' 자기 자신이 지은 공덕을 자기가 모두 가지려고 하면 그것은 가짐의 공덕 즉, 유루의 공덕이 되어 나중에 자신의 업보가 된다. 가짐이 없는 공덕, 집착함이 없이 자기 자신의 모든 공덕을 다른 곳으로 회향하면 그것은 곧 무루의 공덕이 되고 참 공덕이 된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의 공덕을 타인을 위해 회향하지만 그것은 참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

불로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고 엄청난 바람이 불어 천지가 다 무너져도 그 가운데 무너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진실한 참 자기이다. 그것을 찾으려면 한 번 마음을 크게 돌려 먹고 일체의 자기를 버려야만 철벽과 같은 자신의 업보의 벽을 녹여버릴 수가 있다. 이 수미산과 같은 업보의 철벽을 허물지 않고는 결코 해탈하여 부처님 세계에서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참다운 보배를 얻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해탈열반의 부처님 세계인 칠보산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끝에 마무리로서 환희장마니보적불에게 귀의하고, 원만장보살님께 귀의하고, 회향장보살님께 귀의하여 관음시식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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